허무주의(Nihilism)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울수록 더 짙어지는 현대인의 실존적 문제입니다. 첨단 기술과 소비문화가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이 소유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대인의 내면적 방황은 수백 년 전의 두 인물,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와 고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의 고백과 놀라울 만큼 일치합니다.
1. 물질문명 시대의 공허함과 허무주의
오늘날 인간은 역사상 유례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허무주의는 단순한 철학 사조가 아니라, 의미를 상실한 삶의 상태를 가리키는 현실 진단입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이 모든 노력이 결국 무엇을 남기는가?”라는 질문은 현대인의 일상 깊숙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2. 톨스토이의 고백: 죽음 앞에서 무너진 성공의 의미
레프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명성, 부, 지성을 모두 거머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년기에 극심한 삶의 의미 상실을 경험합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참회록』에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내 삶의 모든 행위는 죽음으로 끝나는데, 그렇다면 왜 살아야 하는가?”
톨스토이는 인간이 죽음을 망각하기 위해 선택하는 무지, 쾌락, 권력, 자기기만이라는 네 가지 도피처를 지적합니다. 이는 오늘날의 소비 중독과 성공 지상주의 사회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3. 솔로몬의 선언: 전도서가 말하는 허무의 본질
전도서 1장 2절 – “헛되고 헛되며”
개역한글 성경 – 전도서 1장 2절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은 지혜와 부, 권력과 쾌락을 모두 경험한 후 인생의 결론으로 “모든 것이 헛되다”고 선언합니다.
히브리어 ‘헛됨(헤벨)’은 안개, 연기처럼 잠시 있다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상 자체의 무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 중심적 삶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4. “해 아래”의 삶과 인간 중심 세계관의 한계
전도서에서 반복되는 표현인 “해 아래에서”는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는 삶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지혜, 쾌락, 노동, 부, 명예 어느 것도 영원한 만족을 줄 수 없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합니다. 이 지점에서 솔로몬과 톨스토이의 결론은 하나로 수렴됩니다.
5. 허무를 넘어서는 전환점: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 12장 1절 – 인생의 방향 전환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솔로몬은 허무의 끝에서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해답을 제시합니다. 이는 종교적 장식이 아니라, 존재론적 해답입니다.
전도서 12장 13절 – 인생의 결론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6. 인간 존재의 근원: 우연이 아닌 창조
시편 139편 13절 – 존재의 기원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인간은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의도와 목적 속에서 창조된 존재입니다. 존재에 목적이 있다는 사실은 허무주의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립니다.
7. 창조주의 뜻을 아는 삶: 신약의 확증
에베소서 5장 17절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사도 바울은 구원 이후의 삶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여정으로 설명합니다.
8. 결론: 허무주의의 종착역에서 발견하는 참된 행복
톨스토이와 솔로몬은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동일한 진실에 도달했습니다.
인간은 창조주 안에서만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더 많이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를 지으신 분의 뜻을 알고 그분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청년기이든 인생의 황혼기이든, 허무를 넘어 소망으로 가는 길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 이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