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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지부지”에서 “시지부지”로: 때를 알지 못한 신앙의 비극

by 삶의 지혜 연구소 2025. 12. 22.

우리말에 **‘흐지부지’**라는 표현이 있다.
약속했던 일, 분명 계획했던 일이 있었지만, 어느새 명확한 결론 없이 유야무야 사라져 버렸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시작은 있었으나 완성은 없는 상태, 책임도 열매도 남지 않는 허무한 결말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풀어 **‘시지부지(時知不知)’**라고 생각해 본다면, 전혀 새로운 의미의 묵상이 열린다.

  • 시(時) : 때
  • 지(知) : 알다
  • 부지(不知) : 알지 못하다

즉, “때가 이른 것을 알지 못했을 때”,
그래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약속과 계획이 결국 흐지부지, 시지부지 되어버린 상태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약속은 있었으나, 때를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

성경을 돌아보면, 이 ‘시지부지’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다.

구약은 분명히 메시아에 대한 약속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다.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다윗에게, 선지자들을 통해 반복해서 주어진 약속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때가 차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체로 이루어졌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15)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약속은 이루어졌지만, 그 약속이 이루어진 ‘때’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복음 1:11)

그 결과, 구약의 약속은 성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에게는 시지부지, 곧 “때를 알지 못함으로 놓쳐버린 약속”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에도 반복될 수 있는 ‘시지부지’

이 이야기가 과거로만 끝날까? 그렇지 않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질문이 던져진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를 때에 말한 것은 때가 이르면 기억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6:4)

“내가 너희에게 일이 이루기 전에 말한 것은 일이 이루어질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4:29)

그리고 신약의 마지막 예언서인 요한계시록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을 기록한 책이라 증언한다(계 1:1).

문제는 다시 동일하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니라, 때를 분별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또다시 우리 신앙 안에서 시지부지 되어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때를 분별하는 눈’이다

신앙의 위기는 무지에서만 오지 않는다.
오히려 말씀을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때를 분별하지 못할 때 찾아온다.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별할 줄 알지 못하느냐”
(누가복음 12:56)

약속은 분명하다.
계획도 분명하다.
그러나 그 약속이 지금, 이 때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시지부지가 될 뿐이다.

맺으며: 흐지부지가 아닌, 성취의 신앙으로

하나님은 흐지부지 일하시는 분이 아니다.
다만 인간이 때를 알지 못할 뿐이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가?
이미 말씀하신 것을 기다리기만 하다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눈앞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여전히 과거의 틀로만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시지부지의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알아보는 신앙,
약속의 실상을 붙드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지혜 있는 자는 때와 판단을 분별하나니”
(전도서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