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창조의 이치를 배우라는 삶의 부르심
공부란 무엇일까?
우리는 평생 공부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이 질문에 깊이 답해본 적은 많지 않다. 시험을 위해, 성공을 위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부하지만, 어느 순간 마음 한편에 이런 질문이 남는다.
“이렇게 배우며 살아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공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부, 단순한 지식 습득일까?
영어 study, 중국어 학습(學習), 일본어 면강(勉強) 은 모두
배우고 익히며 힘쓰는 행위를 뜻한다.
그런데 한국어에는 유독 특별한 단어가 있다.
바로 공부(工夫) 다.
공부는 단순히 외우고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어떤 뜻을 이루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부는 학창 시절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여정이 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 우리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평생 공부하는가?
성경이 말하는 참된 배움의 방향
성경은 지식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한다.
지식에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잠언 1:7, 개역한글)
성경에서 말하는 지식은
정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누구를 알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을 떠난 지식은 많아질수록 교만해지고,
목적을 잃은 배움은 결국 허무로 끝난다.
지식은 넘치는데 왜 공허할까?
오늘날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 “열심히 살았는데 공허하다”
- “왜 사는지 모르겠다”
- “성공했는데 마음이 비어 있다”
이 질문은 이미 성경에서 오래전에 다루어진 주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
솔로몬은 인생의 모든 지식과 성취를 경험한 후,
마침내 이런 결론에 이른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 12:13)
👉 공부가 하나님을 떠나면,
아무리 많아도 삶의 의미를 채워주지 못한다.
공부를 다시 정의하다
창조의 이치를 배우는 삶
성경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소개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그리고 인간은 이렇게 지음 받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창세기 1:27)
우리는 우연이 아니라
뜻을 가지고 지음 받은 존재다.
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예레미야 3:14)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을 책임지고 이끄시는 분임을 보여준다.
이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공부란 단순히 세상에서 잘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와 인간 안에 담긴
창조의 질서와 뜻을 배우는 과정
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공부는 삶을 살린다
다윗은 자신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한다.
“주께서 나의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시편 139:13)
우리를 지으신 분이 계시다면,
우리 삶의 목적을 가장 잘 아시는 분도 그분이다.
그러므로 참된 공부란
- 나를 만드신 분을 알고
- 그분의 뜻을 배우며
- 그 뜻 안에서 나의 자리를 발견하는 것
이다.
이때 공부는 부담이 아니라
사명을 발견하는 통로가 된다.
모든 사람을 향한 초대
이 이야기는 특정 종교인만을 위한 말이 아니다.
성경은 말한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사도행전 17:26)
모든 사람은
- 같은 창조주에게서 나왔고
-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 “나는 왜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
그것이 바로 공부의 시작이다.
맺음말: 다시 공부를 생각하다
오늘 우리는 다시 묻는다.
- 나는 무엇을 위해 배우고 있는가?
- 이 공부는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 창조주의 뜻을 향해 가고 있는가?
공부는 시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10)
잠시 멈추어 묻고,
다시 배우고,
다시 방향을 잡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참된 공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