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피조물이라는 자각에서 시작되는 진짜 자아 찾기”
부제: 끝없는 논쟁을 멈추고 존재의 근원을 묻다
1. 끝나지 않는 논쟁, 왜 답이 없을까?
사람들 사이의 논쟁은 종종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철학 토론도, 종교 논쟁도, 심지어 과학 논쟁도 마찬가지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이 질문이 수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반복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출발점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기준으로 삼아 세상을 설명하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논쟁은 원을 그리며 반복된다.
2.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인가?
우리가 진짜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인가,
아니면 지음을 받은 존재인가?”
우리는 태어남을 선택하지 않았다.
생명의 시작도, 시간과 장소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자존적 존재가 아니라 의존적 존재,
곧 피조물임을 알 수 있다.
3. 부모와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만나는 ‘시작점’
부모가 나를 낳았고,
그 부모 또한 누군가에게서 태어났다.
조상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반드시 한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그렇다면, 처음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원인이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한 사슬은
설명이 아니라 회피다.
설명에는 반드시 ‘처음’이 필요하다.
4. 지은 분이 계시기에 만물이 있다
성경은 그 시작점을 분명히 선언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이 문장은 논증이 아니라 선포다.
왜냐하면 창조주는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설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지은 분이 계셨기에
우주가 있고, 생명이 있고, 내가 있다.
5. 성경이 특별한 이유: 예언과 성취
성경이 단순한 종교 서적이 아니라는 증거는
예언과 성취라는 독특한 구조에 있다.
하나님은 사건이 일어난 뒤 해석하지 않으신다.
먼저 말씀하시고, 정한 때에 그대로 이루신다.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새 일을 내가 고하노라” (이사야 42:9)
이는 피조물의 지식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6.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는가?
만일 지은 분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이렇게 선언할 수 있겠는가?
“내가 천지를 창조하였다.”
성경의 하나님은 주저하지 않고 말씀하신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행하였고
나만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지었느니라” (이사야 44:24)
이 선언 앞에서 인간은 논쟁이 아니라
겸손한 인식으로 서게 된다.
7. 피조물이라는 자각이 자존감을 무너뜨릴까?
오히려 그 반대다.
피조물이라는 자각은
나를 하찮게 만들지 않는다.
의미 없는 우연에서 나를 구해 준다.
나는 우연히 생긴 존재가 아니라
의도와 목적 가운데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8.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의 답은 여기에 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의 답은
내 안이 아니라 나를 지으신 분에게서 온다.
창조주를 알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을 안다.
논쟁은 멈추고,
존재는 설명되며,
삶은 목적을 되찾는다.
맺는말
끝없는 논쟁 속에서 길을 잃은 시대에
우리는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자각,
그곳에서 진짜 자아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