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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經)과 서(書)의 차이, 왜 구분해야 하는가

by 삶의 지혜 연구소 2026. 1. 7.

오늘날 우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고전과 경전을 접합니다. 특히 유교에는 시경·서경·역경과 같은 ‘경(經)’이 있고, 논어·맹자와 같은 ‘서(書)’가 있습니다. 또한 불교에도 ‘불경(佛經)’이 있고, 기독교에는 ‘성경(聖經)’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모두 ‘경’이라 불리는데, 그 본질도 같은 것일까요? 이 글에서는 ‘경’과 ‘서’의 의미를 정리하고, 계시 경전과 철학 경전의 차이를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자 합니다.

경(經)의 뜻과 의미

‘경(經)’이라는 한자는 본래 베틀의 세로줄, 즉 전체를 지탱하는 기준선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파생되어 ‘경’은 변하지 않는 근본 원리, 시대를 초월한 규범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 전통에서 ‘경’이라 불린 책들은 단순한 지식서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가 따라야 할 최상위 기준으로 여겨졌습니다.

유교의 오경(五經)인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가 바로 그 예입니다. 이 책들은 공자 개인의 사상이 아니라, 공자 이전의 성왕들이 남긴 도(道)를 정리·전승한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스스로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문에 ‘경’은 해석의 대상은 될 수 있어도, 함부로 수정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서(書)의 뜻과 역할

반면 ‘서(書)’는 말 그대로 기록된 글을 의미합니다. 서는 어떤 기준을 설명하고, 가르치고, 이해시키기 위해 쓰인 문헌입니다. 유교의 사서(四書)인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은 모두 성인이나 학자들의 말과 사상을 기록한 책으로, 교육과 토론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즉, 경이 길이라면 서는 그 길을 설명한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해석과 비판, 보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경과 분명히 구분됩니다.

“경은 신의 글, 서는 사람의 글”이라는 말의 의미

흔히 “경은 신이 준 글이고, 서는 사람이 쓴 글”이라는 설명을 듣곤 합니다. 이 말은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개념적으로는 일정 부분 타당합니다. 동아시아에서 말하는 ‘하늘(天)’이나 ‘도(道)’는 인간을 초월한 질서를 의미하며, 경은 바로 그 질서에서 나온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반면 서는 인간이 그 질서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모든 ‘경’이 곧 계시 경전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계시 경전과 철학 경전의 차이

계시 경전은 신이 인간에게 먼저 말씀하셨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기독교의 성경이나 이슬람의 꾸란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경전은 인간의 사유 이전에 신의 뜻이 제시되며, 인간은 그 말씀에 응답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창조, 인간의 한계, 죄와 구원, 심판과 같은 인간이 스스로 알 수 없는 영역이 핵심 내용입니다.

반면 유교 경전이나 불교 경전은 인간의 깨달음과 사유에서 출발합니다. 공자는 도덕적 질서를 탐구했고, 석가모니는 고통의 원인을 깨닫고 해탈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 경전들은 매우 깊은 지혜를 담고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인간이 길을 찾는 철학 경전에 속합니다.

왜 이 구분이 중요한가

‘경’이라는 이름만으로 모든 경전을 동일하게 보면, 종교와 철학, 계시와 사상이 혼합되어 혼란이 생깁니다. 경전의 가치는 이름이 아니라 출발점과 권위 구조에 있습니다. 신이 인간을 찾아온 기록인지, 인간이 진리를 찾으려 한 기록인지를 구분할 때, 각 전통의 성격이 분명해집니다.

맺음말

정리하면, 경은 기준이고 서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모든 ‘경’이 계시 경전은 아닙니다. 이 구분을 이해할 때 우리는 고전을 더 깊이 존중할 수 있고, 동시에 신앙과 철학을 혼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경과 서를 다시 구분해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