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왜 끊임없이 갈등과 분열, 미움과 상처를 반복하는가. 기술은 발전했고 지식은 넘쳐나지만, 인간 사회는 여전히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매우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설명한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며, 그 마음의 중심에는 ‘누가 주인인가’라는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앞날의 일을 미리 말씀하시는가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단순히 능력 있는 존재로 소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앞날에 이루어질 일을 미리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역사 속에서 그대로 이루시는 분으로 자신을 증명하신다. 이는 인간에게 믿음을 강요하기 위함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주기 위함이다.
앞날의 일을 정확히 아는 능력은 인간의 예측이나 통계로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시간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아시는 분, 곧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만이 가능한 영역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언과 성취는 하나님의 능력 과시가 아니라, 창조주이심을 증명하는 표지가 된다.
창조주를 모를 때 인간에게 나타나는 변화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인생의 주인 자리에 올려놓게 된다. 이때 나타나는 특징은 분명하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절대화하고, 타인을 쉽게 정죄하며, 양보와 용서를 약함으로 여긴다. 성경은 이를 인간 안에 심어진 교만, 곧 사단이 심어 놓은 자존심의 열매라고 설명한다.
이 자존심은 개인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정의 갈등, 사회의 분열, 국가 간의 전쟁까지 확장된다. 모두가 옳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도 기꺼이 낮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창조주를 알게 될 때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
반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정확히 알게 되면 인간의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앞날을 말씀하시고 그대로 이루시는 분 앞에서 인간은 자신이 피조물임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겸손하게 만든다.
겸손은 자신을 비하하는 태도가 아니다. 진실을 바로 아는 데서 오는 건강한 마음의 자세다. 자신도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게 될 때, 타인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게 되고, 용서는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열매가 된다.
겸손이 만들어 내는 세상의 변화
겸손해진 마음은 관계를 회복시킨다. 미움보다 이해를 선택하게 하고, 복수보다 용서를 택하게 한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이며, 평화는 이상이 아니라 통치의 결과다.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 되실 때, 그 통치가 임한 자리마다 천국의 질서가 시작된다.
그래서 성경은 천국을 단지 죽어서 가는 장소로만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자리마다 천국은 이미 시작된다고 말한다.
왜 모두가 이 길을 선택하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왜 이토록 분명한 길 앞에서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 성경은 그 이유도 솔직하게 말한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증명하시되 강요하지 않으시며, 깨닫게 하시되 선택은 인간에게 맡기신다.
결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제도가 아니라 마음이다
이 세상이 평화와 사랑, 용서가 흐르는 곳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규칙이나 통제가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자신이 피조물임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이다. 그 마음이 개인을 바꾸고, 개인의 변화가 가정과 사회를 변화시킨다.
성경의 역사는 이를 증명해 왔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이루심으로 자신을 드러내셨고, 이제도 동일한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신다. 창조주를 아는 지식이 마음에 닿을 때, 세상은 조금씩 천국의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