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94) 썸네일형 리스트형 [신앙 칼럼] 핍박의 역사와 성경적 분별: '먼저 난 자'의 굴레를 벗어라 오늘날 기독교계는 '정통'과 '이단'이라는 이름 아래 유례없는 갈등과 반목을 겪고 있습니다. 자칭 정통이라 자부하는 교단들이 자신들과 교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타 교단을 정죄하고 압박하는 행위는 과연 성경적으로 정당한 '정의의 구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불법'입니까? 성경의 거울을 통해 그 실상을 비추어 보고자 합니다.1. 핍박의 역사: 육체를 따라 난 자와 성령을 따라 난 자성경의 역사는 역설적이게도 '핍박받는 자'의 편에 하나님이 계셨음을 증거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29절에서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명시했습니다.가인이 아벨을, 에서가 야곱을,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핍박했던 역사는 모두 '먼저 난 자(기.. 죽음의 문턱에서 드린 기도는 어디로 갔는가 생존의 관성을 깨고, 실존의 소망으로 나아가는 법인생의 거대한 풍랑 앞에 서면 인간은 누구나 겸허해진다. 암 선고를 받은 병실의 침상에서,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의 참호 속에서, 혹은 생사가 갈리는 사고의 찰나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절대자를 찾는다. "한 번만 살려주신다면, 남은 삶은 이전과 다르게 살겠습니다." 그 간절한 기도는 단순한 살려달라는 외침을 넘어, 가치 있는 삶을 살겠다는 엄숙한 서약이기도 하다.그러나 기적처럼 고비를 넘기고 평온한 일상이 찾아오면, 그 뜨거웠던 서약은 얼음 녹듯 사라진다. 죽음의 공포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다시 '먹고 사는 문제'라는 생존의 파도가 차오른다. 어제는 생명을 구걸하던 이가 오늘은 사소한 이익에 일희일비하고, 남보다 더 많이 가지지 못해 안달하며 의미 없는.. 과학은 생존을 위한 길인가, 실존을 위한 길인가 인류 문명의 방향을 묻는 근본 질문인류가 걸어온 과학의 역사를 한 문장으로 묻는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과학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길인가, 아니면 실존을 위한 길인가?”이 질문은 단순한 학문 평가가 아니라 문명의 목적을 묻는 질문이다.지금까지 과학이 이룬 성과를 보면 분명한 답이 하나 보인다.과학은 먼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해 왔다.과학의 출발점은 생존이었다인류의 초기 과학은 대부분 살아남기 위한 지식에서 시작되었다.농업 기술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발전했고의학은 질병과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발전했으며산업기술은 더 많은 생산과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해 발전했다.근대 과학의 방향을 제시한 철학자Francis Bacon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지식은 힘이다.”여기서 말하는 힘은 단순한 지식이 .. 생존을 넘어 실존으로 ― 왜 전도는 의무가 아니라 존재의 응답인가 1.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현대 사회는 철저히 생존 중심 구조 위에 서 있습니다.경제, 교육, 직장, 심지어 종교 활동까지도 “유지”와 “안정”의 틀 안에서 작동합니다.생존은 필요합니다.그러나 생존은 목적이 아니라 조건입니다.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지만,“왜 사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이 지점에서 실존이 등장합니다.실존은 존재의 의미, 부르심, 방향을 묻는 차원입니다.2. 생존의 신앙 vs 실존의 신앙신앙도 두 차원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① 생존의 신앙복 받기 위해 믿는다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한다교회를 안전망으로 삼는다이 신앙은 필요하지만, 여기 머물면 전도는 부담이 됩니다.왜냐하면 이미 “내가 살기에도 바쁘기” 때문입니다.② 실존의 신앙나는 왜 구원받았는가?하나님은 왜 나를 이 .. [제1강] 파스칼의 도박: 당신은 어디에 인생을 걸겠습니까? 1. 인학(人學)의 한계: 우리는 무엇을 위해 분투하는가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살아남는 법(인학)'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자립, 건강 관리, 효율적인 시간 활용 등 생존을 위한 지식은 넘쳐나지만, 정작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 앞에서는 침묵하곤 합니다.17세기의 천재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인간을 '비참함과 위대함 사이를 오가는 존재'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생존의 문제에만 매몰되는 현상을 '오락(Divertissement)'이라 불렀습니다. 죽음과 허무라는 본질적인 공포를 잊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에 몰두한다는 것입니다.2. 파스칼의 도박(Pascal's Wager): 이성적인 선택의 기로파스칼은 신.. 배부른 돼지의 ‘집단 홀릭’에서 깨어나라: 생존의 연장인가, 실존의 깊이인가 오늘날 우리는 유례없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굶주림보다 비만을 걱정하고, 내일의 안위보다 오늘의 즐거움을 쫓는 기술과 자본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대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공허합니다. 왜 우리는 더 잘 먹고 더 오래 살게 되었음에도 "왜 사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이토록 무력해지는 것일까요?1. 생존의 쳇바퀴: 시간만 늘리는 삶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삶에는 두 가지 축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존(Survival)'**이고, 다른 하나는 **'실존(Existence)'**입니다.생존은 육체의 영역입니다. 배고픔을 채우고 위험을 피하며 '시간의 선'을 길게 늘리는 행위입니다. 마치 책의 페이지 수를 늘리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실존은 영혼의 영역입니다. 내가 어디.. 밀의 구도: 질적 쾌락의 위계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에서“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낫다.”라고 말합니다.핵심은 이것입니다:낮은 차원의 충족(감각적 만족)높은 차원의 충족(이성·도덕·진리 추구)인간은 낮은 만족으로는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다.왜냐하면 인간은 고등한 기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2. “사약 vs 불사약”의 구조당신이 사용하는 구도는 단순히 “나쁜 것 vs 좋은 것”이 아닙니다.사약불사약당장은 달다처음엔 쓰다즉각적 만족지연된 충만자율성 환상주권 위임결국 죽음결국 생명이 구조는 시간 차원과 존재 차원을 모두 포함합니다.3. 두 구조의 접점이제 두 사상을 겹쳐보면 다음과 같습니다.(1) 배부른 돼지 = 사약 구조감각적 만족즉각적 충족깊은 질문을 회피존재의 차원을 축소이는 “지금 배부르면 된다”는 태도입니다.. 내가 큰 용서를 깨달아야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이유 – 성경이 말하는 용서의 구조1. 왜 우리는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는가?“용서하라”는 말은 쉽지만 실제는 어렵습니다.특히 억울함과 상처가 깊을수록 더 그렇습니다.그 이유는 단순합니다.나는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그는 가해자라고 규정합니다.정의는 내가 세워야 한다고 느낍니다.즉, 나는 받을 사람이고 그는 갚아야 할 사람이라는 구조가 형성됩니다.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원수 용서는 불가능합니다.2. 예수님이 말씀하신 ‘빚 탕감 비유’의 핵심예수님은 용서의 본질을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마태복음 18장에는‘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한 종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받습니다.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작은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습니다.결국 주인은 그를 “악한 종”이라 선언합니다.여기서 중요한 .. 이전 1 2 3 4 5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