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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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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생존을 위한 길인가, 실존을 위한 길인가 인류 문명의 방향을 묻는 근본 질문인류가 걸어온 과학의 역사를 한 문장으로 묻는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과학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길인가, 아니면 실존을 위한 길인가?”이 질문은 단순한 학문 평가가 아니라 문명의 목적을 묻는 질문이다.지금까지 과학이 이룬 성과를 보면 분명한 답이 하나 보인다.과학은 먼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전해 왔다.과학의 출발점은 생존이었다인류의 초기 과학은 대부분 살아남기 위한 지식에서 시작되었다.농업 기술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발전했고의학은 질병과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발전했으며산업기술은 더 많은 생산과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해 발전했다.근대 과학의 방향을 제시한 철학자Francis Bacon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지식은 힘이다.”여기서 말하는 힘은 단순한 지식이 ..
생존을 넘어 실존으로 ― 왜 전도는 의무가 아니라 존재의 응답인가 1.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현대 사회는 철저히 생존 중심 구조 위에 서 있습니다.경제, 교육, 직장, 심지어 종교 활동까지도 “유지”와 “안정”의 틀 안에서 작동합니다.생존은 필요합니다.그러나 생존은 목적이 아니라 조건입니다.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되었지만,“왜 사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이 지점에서 실존이 등장합니다.실존은 존재의 의미, 부르심, 방향을 묻는 차원입니다.2. 생존의 신앙 vs 실존의 신앙신앙도 두 차원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① 생존의 신앙복 받기 위해 믿는다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한다교회를 안전망으로 삼는다이 신앙은 필요하지만, 여기 머물면 전도는 부담이 됩니다.왜냐하면 이미 “내가 살기에도 바쁘기” 때문입니다.② 실존의 신앙나는 왜 구원받았는가?하나님은 왜 나를 이 ..
[제1강] 파스칼의 도박: 당신은 어디에 인생을 걸겠습니까? 1. 인학(人學)의 한계: 우리는 무엇을 위해 분투하는가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살아남는 법(인학)'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자립, 건강 관리, 효율적인 시간 활용 등 생존을 위한 지식은 넘쳐나지만, 정작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질문 앞에서는 침묵하곤 합니다.17세기의 천재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인간을 '비참함과 위대함 사이를 오가는 존재'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생존의 문제에만 매몰되는 현상을 '오락(Divertissement)'이라 불렀습니다. 죽음과 허무라는 본질적인 공포를 잊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에 몰두한다는 것입니다.2. 파스칼의 도박(Pascal's Wager): 이성적인 선택의 기로파스칼은 신..
배부른 돼지의 ‘집단 홀릭’에서 깨어나라: 생존의 연장인가, 실존의 깊이인가 오늘날 우리는 유례없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굶주림보다 비만을 걱정하고, 내일의 안위보다 오늘의 즐거움을 쫓는 기술과 자본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대인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공허합니다. 왜 우리는 더 잘 먹고 더 오래 살게 되었음에도 "왜 사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이토록 무력해지는 것일까요?1. 생존의 쳇바퀴: 시간만 늘리는 삶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삶에는 두 가지 축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존(Survival)'**이고, 다른 하나는 **'실존(Existence)'**입니다.생존은 육체의 영역입니다. 배고픔을 채우고 위험을 피하며 '시간의 선'을 길게 늘리는 행위입니다. 마치 책의 페이지 수를 늘리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실존은 영혼의 영역입니다. 내가 어디..
밀의 구도: 질적 쾌락의 위계 **존 스튜어트 밀**은 『공리주의』에서“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낫다.”라고 말합니다.핵심은 이것입니다:낮은 차원의 충족(감각적 만족)높은 차원의 충족(이성·도덕·진리 추구)인간은 낮은 만족으로는 완전히 충족되지 않는다.왜냐하면 인간은 고등한 기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2. “사약 vs 불사약”의 구조당신이 사용하는 구도는 단순히 “나쁜 것 vs 좋은 것”이 아닙니다.사약불사약당장은 달다처음엔 쓰다즉각적 만족지연된 충만자율성 환상주권 위임결국 죽음결국 생명이 구조는 시간 차원과 존재 차원을 모두 포함합니다.3. 두 구조의 접점이제 두 사상을 겹쳐보면 다음과 같습니다.(1) 배부른 돼지 = 사약 구조감각적 만족즉각적 충족깊은 질문을 회피존재의 차원을 축소이는 “지금 배부르면 된다”는 태도입니다..
내가 큰 용서를 깨달아야 남을 용서할 수 있는 이유 – 성경이 말하는 용서의 구조1. 왜 우리는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는가?“용서하라”는 말은 쉽지만 실제는 어렵습니다.특히 억울함과 상처가 깊을수록 더 그렇습니다.그 이유는 단순합니다.나는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그는 가해자라고 규정합니다.정의는 내가 세워야 한다고 느낍니다.즉, 나는 받을 사람이고 그는 갚아야 할 사람이라는 구조가 형성됩니다.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원수 용서는 불가능합니다.2. 예수님이 말씀하신 ‘빚 탕감 비유’의 핵심예수님은 용서의 본질을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마태복음 18장에는‘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의 이야기가 나옵니다.한 종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받습니다.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작은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습니다.결국 주인은 그를 “악한 종”이라 선언합니다.여기서 중요한 ..
육언 육폐란 무엇인가? – 덕을 좋아하는 것과 배우는 것의 차이 **육언 육폐(六言六蔽)**는 공자가 『논어』 「양화편」에서 제자 자로에게 한 말입니다.그 핵심은 단순합니다.“덕을 좋아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반드시 폐단이 생긴다.”즉, 좋은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입니다.덕은 훈련과 분별을 거칠 때 비로소 덕이 됩니다.1. 인(仁)을 좋아하되 배우지 않으면 우(愚)에 빠진다✔ 실례 1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금전적 지원을 하면서 자립을 가르치지 않음.→ 사랑이 의존을 낳는다.✔ 실례 2공동체 질서를 어긴 사람을 “사랑으로 덮자”라며 무조건 감싸 공동체 전체가 피해를 봄.→ 인이 정의를 잃으면 어리석음이 된다.핵심: 인은 감정이 아니라 분별을 포함한 덕목이다.2. 지(智)를 좋아하되 배우지 않으면 방(放, 방탕)에 흐른다✔ 실례 1지식이 많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인가? '자기 주권'을 식별하는 4가지 영적 신호 많은 신앙인이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실제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기 주권'을 행사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내 자아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음을 알리는 위험 신호는 무엇일까요? 바리새인의 사례와 성경 구절(개역한글)을 통해 점검해 봅니다.1. 정죄와 비판: 재판장의 자리에 앉은 자아가장 명확한 자기 주권의 증거는 타인을 향한 **'정죄'**입니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내가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최종 권위자, 즉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 있다는 증거입니다.마태복음 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야고보서 4:12: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